약물을 체내에 주입해 장기간 피임 효과를 유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피임약이 등장했다. 동물 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었으며 곧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진행될 전망이다.
지오반니 트래버소 미국 하버드대 의대 부속 브리검여성병원 교수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단순한 주사 시술을 통해 임플란트를 체내에 형성하면 오랫동안 피임 효과를 지속하는 '자가 형성형 임플란트 피임약'을 개발하고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엔지니어링'에 24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자가 조립(self-assembling)’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약물 전달 시스템이다. 기존 임플란트 피임약은 몸속에 삽입한 후 수년간 피임 효과를 유지할 수 있지만 외과적 시술이 필요하고 시술 인력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 개발된 방식은 단순한 주사만으로 체내에 고체 형태의 임플란트를 형성할 수 있어 환자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연구팀은 배란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인공 결정체를 수분과 잘 섞이지 않는 용매 속에 미세한 입자 형태로 포함시켜 주사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주입된 용액은 체내에서 체액과 용매가 교환되는 과정을 거친다. 곧 수분을 기피하는 미세 결정체들이 서로 응집해 고체 상태의 임플란트를 형성한다. 이 구조는 서서히 약물을 방출해 장기간에 걸쳐 효과를 유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