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메디슨이 글로벌 최고 수준의 병원에 프리미엄 초음파 진단기를 공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메디슨은 최근 영국 1위 병원인 런던대학병원(UCLH) 영상의학과에 프리미엄 초음파 진단기기 ‘R20’을 공급하기로 했다. 한국의 의료기기 업체들에 UCLH는 유럽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반드시 뚫어야 하는 ‘통곡의 벽’으로 알려진 병원이다. 이곳의 까다로운 교수진에게 장비 등을 공급해 수주 실적을 확보하는 것은 유럽 전체 의료 시장의 ‘빗장’을 한 번에 열 수 있는 중요한 열쇠로 통한다. 이미 유럽에서 삼성메디슨 전체 매출(올해 1분기 기준)의 34%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인 점을 감안하면 유럽 시장점유율 확대의 중요한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번 공급은 단순한 장비 납품을 넘어 국제 학회와 임상 연구를 선도하는 유럽 최고 수준의 의료진과 협력할 수 있는 연구 거점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삼성메디슨은 지난달 개최된 남미 최대 의료기기 박람회인 브라질 상파울루 영상의학회(JPR 2026)에서도 역대 최대 규모의 사전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메디슨이 이처럼 미국과 영국의 핵심 글로벌 대형 병원과 잇따라 공급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던 것은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연구개발(R&D) 경쟁력 때문이다. 초음파 검사는 CT·MRI와 달리 검사자의 숙련도에 따라 진단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삼성메디슨은 AI를 활용해 이러한 편차를 줄이고 진단의 일관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회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AI가 병변 의심 부위를 자동으로 탐지해 의료진의 진단을 보조한다”며 “제품을 시범 사용한 의료진이 성능을 인정하면서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영상의학과용 프리미엄 초음파 장비 ‘R20’에는 간과 유방의 병변 의심 부위를 실시간으로 탐지하는 AI 기능이 탑재됐다. 의료진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보완해 검사자 간 진단 편차를 줄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딥러닝 기반의 ‘너브트랙’은 신경 위치와 혈관·근육·뼈 등 주요 해부학적 구조물을 자동으로 인식해 시각화함으로써 정밀 시술의 정확성과 편의성을 높여준다.
산부인과용 프리미엄 초음파 장비 ‘HERA Z20’도 AI 기능을 전면에 내세웠다. 태아 초음파 검사에 필요한 단면과 주요 측정값을 자동으로 제공하고 태반, 자궁, 양수, 태아 얼굴 등을 자동 분할해 3차원(3D) 영상으로 구현한다. 영상 품질도 차별화 요소다. R20에는 독자 개발한 소프트웨어 기반 영상 처리 기술이 적용돼 해상도와 투과도를 높였다. 이를 통해 췌장·담관·간 등 관찰이 까다로운 장기에서도 선명한 영상을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AI 기술 경쟁력은 지속적인 R&D 투자에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삼성메디슨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2023년 14%에서 지난해 16%, 올해 1분기 17%까지 확대됐다. 2024년에는 프랑스 태아 진단 AI 기업 ‘소니오’를 1300억 원에 인수하며 창사 이래 첫 인수합병(M&A)에 나섰다.
연구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삼성메디슨은 지난해 3분기 AI R&D 역량 강화를 위해 AI&NX팀을 신설했다. 기존 개발팀 산하 AI그룹을 팀 단위 조직으로 격상해 유규태 대표 직속으로 재편하고 산하에 AI&인포메틱스 그룹을 배치했다. AI를 회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셈이다.
여기에 삼성전자(005930)의 글로벌 영업망과 브랜드 경쟁력이 더해진 것도 삼성메디슨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분석된다. 삼성메디슨은 현재 삼성전자 글로벌 법인 14곳과 현지 대리점을 활용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프리미엄 제품 경쟁력에 삼성전자의 글로벌 영업망과 브랜드 파워가 더해지면서 북미와 유럽 대형 병원 공략에 속도가 붙었다는 분석이다. 전체 매출의 약 90%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만큼 현지 영업·마케팅 네트워크는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에는 미국 내 초음파, CT, 디지털 엑스레이 사업을 통합한 의료기기 법인 ‘삼성 HME 아메리카’를 출범시키며 판매 체계도 일원화했다. 업계에서는 각 제품별로 나뉜 영업망이 한곳으로 통합된 만큼 추가 계약과 시장점유율 확대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메디슨 실적은 삼성전자와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면서 매년 역대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며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삼성메디슨 매출은 2023년 5174억 원, 2024년 5712억 원, 2025년 6651억 원으로 증가하며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2023년 864억 원에서 2024년 793억 원, 2025년 870억 원으로 확대됐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 1866억 원, 영업이익 241억 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1%, 0.4% 증가했다.